[스포주의]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후기: 음모론 전도사가 된 스필버그의 엉망진창 다큐멘터리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아마 주저 없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꼽을 것입니다. 어릴 적 극장에서 보았던 쥬라기 공원은 시각효과의 신기원을 보여주며 저를 영화라는 매체에 완전히 매료되게 만든 꿈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수많은 명작을 통해 항상 독보적인 전율과 감동을 영화라는 매체로 전해주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연출력과 관객을 설득하는 힘은 영화 역사상 늘 독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신작 디스클로저 데이(Disclosure Day를 향한 기대 역시 매우 컸습니다. 실제로 예고편에서 보여준, 마가렛(에밀리 블런트)이 생방송 중 갑자기 괴기스러운 외계어로 방송 사고를 내는 장면까지는 몰입감이 대단했고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러닝타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라고는 믿기 힘든 허술한 설정과 개연성 붕괴가 잇달아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극장을 나서는 마음은 실망을 넘어 씁쓸함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번 영화에서 드러난 서사의 개연성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워덱스의 전술적 오류와 개연성의 붕괴
79년 동안 수많은 목격자, 촬영 기록, 그리고 외계인 관련 정보들을 은폐해 온 초국가적 비밀기관인 워덱스는 엄청난 정보력과 통제력을 갖춘 집단이어야만 합니다. 영화 초반에 묘사되는 워덱스의 첨단 상황실은 그러한 위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 유출이라는 초유의 위기 사태에 대응하는 그들의 행동을 보면, 아무리 너그럽게 넘어가려 해도 황당한 의문들이 꼬리를 뭅니다. 이들은 소대 단위조차 되지 않는 인원으로 추격을 진행하며, 바보 같은 삽질을 영화 내내 거듭합니다.
영화 초반부, 레슬링 경기장에서 데니얼(히메시 파텔)을 놓친 부하들을 향해 워덱스 국장이(콜린 퍼스)가 "컴퓨터쟁이 하나를 못 잡냐"고 호통을 칩니다. 문제는, 이 말을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모텔 포위 장면을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워덱스 요원들은 어렵사리 타겟의 위치를 알아내어 들이닥치지만, 전원이 모텔 정문 앞에만 우르르 몰려 서 있습니다. 뒷문이나 화장실 창문 같은 기본적인 도주로를 감시하거나 차단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제인(이브 휴슨)은 화장실 창문을 열고 유유히 걸어서 탈출합니다. 손에 땀을 쥐어야 할 추격전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의 숨바꼭질 수준으로 전개되니 긴장감이 생길 턱이 없습니다.
헛간 추격 시퀀스는 더욱 가관입니다. 이번에도 요원들은 십여 대의 차량을 몰고 수십 명이 들이닥치는데, 마치 전시용 차량처럼 길가에 차를 예쁘게 주차해 두고는 오직 목표지점인 헛간을 향해서만 무지성으로 전진합니다. 좌우나 후방을 경계하는 요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인 데니얼이 고개만 대충 숙이고 다니다 포복으로 기어가서 요원 바로 뒤에 주차된 차량을 훔쳐 타는 동안에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불과 5미터 거리에 요원이 버젓이 서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차를 훔쳐 탈출하는 주인공 일행의 타이어를 쏴서 터뜨리는 데는 성공해 놓고도, 카체이스 과정에서 놓쳐버립니다.
절벽 수색 장면은 또 어떤가요? 차량을 절벽 아래 물속으로 밀어 넣고 갓길로 도망치자, 추격하는 요원들은 그저 차가 추락한 것만 보고 잠수부를 부르며 수색을 끝내버립니다. 상식적으로 병력을 나누어 반은 절벽 하단을 수색하고, 나머지 반은 도보 도주로를 차단하며 뒤쫓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 집단에는 지휘관도 없고 요원 개개인의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솔직히 무작위로 소집된 우리나라 예비군들에게 적당한 포상금을 걸고 임무를 주어도 이들보다 훨씬 빠르고 깔끔하게 잡아왔을 것 같습니다. 초국가적 특수 기구 요원들이라는 자들이 이러고 있으니 몰입감이 완전히 깨집니다.
마가렛이 얻은 '마인드 컨트롤' 능력의 대처 방식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시선을 마주치고 대상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졌다면, 워덱스 측에서는 즉각 이를 우회하는 전술을 수립하면 그만입니다. 보안 유지가 최우선이므로 굳이 생포할 이유도 없으니, 시야 밖 원거리에서 저격 소총으로 제거하거나 드론을 띄워 제압하면 끝날 일입니다.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게임에서 무한 마나로 마인드 컨트롤을 난사하는 다크 아칸을 상대할 때도, 사거리 밖에서 시즈탱크로 공격하거나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끝까지 정면 조우를 고집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마지막 방송국 시퀀스는 이러한 무능함의 정점을 찍습니다. 초국가적인 권력을 쥔 기관이 방송 송출을 막기 위해 쓴 방법이 고작 방송국 외부 전력을 차단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무장 병력으로 스튜디오 문을 물리적으로 부수고 들어가 송출 장비를 깨부수면 될 일인데 밖에서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제한 시간 직전 아슬아슬하게 라이브로 진실을 밝히는 카타르시스'를 억지로 쥐어짜 내기 위해 요원들의 헛짓을 하게 만드는 게으른 각본입니다. 게다가 방송국 건물 포위조차 허술하게 해서, 제인이 핵심 기밀인 외계 물질을 손에 들고 아무런 제재 없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마가렛에게 전달하도록 방치합니다. 이는 극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작동합니다.
여기에 국장은 결말부에서 왜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객 모드'로 변신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빌런으로서의 신념이나 직업윤리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거라면 사전에 타당한 감정적 빌드업이 있었어야 합니다. 이때 옆에 있던 행동대장 격의 요원이 "저 여자 안 막냐고요!"라고 소리치는데, 제 마음도 그와 같았습니다. 한편으로 그 요원은 영화 내내 마인드 컨트롤에 걸리지 않고 꿋꿋하게 저항하며 쫓아오는데, 왜 그에게는 외계인의 정신 조종이 통하지 않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개연성적 설명조차 생략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스필버그가 연출한 영화가 맞는지 개탄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애초에 폭로를 위해 굳이 지상파 방송국이라는 공간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버리면 1초 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굳이 번듯한 건물 스튜디오 마이크 앞이어야만 폭로가 성공한다는 설정 자체가, 스필버그 감독의 미디어 감각이 미지와의 조우를 찍던 1970년대에 멈춰 있음을 방증합니다. 이미 영화 '서치'처럼 현대 IT 기술과 미디어의 속성을 장르적으로 훌륭하게 녹여낸 좋은 선례들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스마트폰은 그저 위치를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 부수고 내버려야 하는 도구로만 묘사됩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독재 정부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는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시대착오입니다.
설정 자체의 모순: 무리한 세계관과 무너진 개연성
사실 이 영화는 뿌리가 되는 설정(로스웰 사건)에서부터 근본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과학을 아득히 초월하여 마법과 다름없는 기술력을 가진 우주적 존재를, 일개 인간 정부가 납치하여 감금하고 고문하면서 그 기술을 역설계해왔다는 발상부터가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치겠습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미디어 노출 and 감시망이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무려 79년 동안이나 그 어마어마한 진실을 완벽하게 숨겨온 워덱스라는 기관은 초국가적이고 압도적인 보안 실행력을 지닌 유능한 집단이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목표로 하는 '외계인 실체 폭로'라는 결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워덱스의 이 철옹성 같은 보안 장벽이 무너져야만 합니다. 영화는 이 목적을 위해 빌런(워덱스)의 능력을 너프시켜 버립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데니얼의 능력이 거의 제이슨 본 급이어야 할 텐데 감독은 그런 액션물을 그리려 한 게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설득력 있게 설정을 만들고 이야기를 끌어나가야 할 텐데 그 설득에 실패했습니다.
게다가 워덱스가 관객에게 명백한 '빌런'으로 각인되려면 그들의 부당함 and 악행이 도덕적으로 확실히 묘사되어야 했습니다. 본 아이덴티티의 트레드스톤처럼, 국가 안보라는 미명 하에 자국민을 무차별적으로 암살하고 불법을 자행하여 법적·도덕적 명분을 완전히 상실한 괴물 집단이어야 폭로의 순간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미국이라는 국가의 관점에서 국익을 지키고 거대한 안보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비밀을 통제하고 기술을 추출하려는 워덱스의 판단은 국가 이성에 지극히 부합하는 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입니다. 외계인을 사랑하는 오타쿠인 스필버그 감독에게는 외계인을 가두고 고문하는 시스템이 끔찍하게 느껴지겠지요. 대중의 관점, 적어도 저에게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충분히 할 법한 국가적 안보 행동'으로 느껴집니다.
이처럼 각본이 워덱스의 비밀주의를 절대악으로 규정할 설득력 있는 도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대책 없이 기밀을 까발려 세상을 대혼란에 빠뜨리려는 주인공 일행이 오히려 세계 질서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인물들처럼 비치게 됩니다. 그러니 이들의 폭로에 큰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대착오적 음모론과 대중 감각의 부재
결국 디스클로저 데이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스필버그 감독이 '로스웰 사건 음모론'을 영화적 상상력의 출발점(소재)이 아닌, 실재하는 '역사적 팩트'로 단정 짓고 영화를 전도 도구처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스필버그 감독은 과거 인터뷰 등을 통해 로스웰 사건이 사실이라고 믿는 듯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얄팍하고 증명되지 않은 음모론을 신념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니 플롯은 끊임없이 억지를 부려야 하고, 연출에는 도무지 개연성이 붙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영화을 보면서 스필버그라는 거장의 대중적 감각이 현대인의 정서와 너무 멀어졌음을 느꼈습니다. '정부는 외계인 관련 비밀을 은폐하는 절대악이며, 그 실체를 폭로하면 온 인류가 연대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너무 설득력이 없고 순진한 생각입니다.
"외계인은 실존하고 정부가 숨기고 있다"는 떡밥은 1990년대 X파일 시절에나 신선했던 구시대의 전유물입니다. 지금에 와서 거창한 폭로가 현대 대중에게 어떤 충격을 줄지 의문입니다. 현대인들의 실제 정서는 어떨까요? "외계인이 있을 수도 있지. 근데 뭐 어쩌라고? 나랑 무슨 상관인데?" 폭로가 터진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미디어는 진위 여부에 대한 검증보다 증시 대폭락 뉴스, 그리고 "외계인 관련 수혜주가 무엇인가"에 대한 검색과 토론으로 가득 차는 것이 훨씬 현실적일 것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세계대전 직전의 긴박한 전시 상황 중 외계인 폭로 영상이 방송을 타자, 뉴스 데스크의 앵커는 "3차 세계대전이 임박했는데 다른 뉴스가 있다고?"라고 묻고, 옆에서는 "당연하지"라며 외계인 영상을 대대적으로 송출합니다. 그러나 내일 당장 핵미사일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절박한 전시 상황에, 화면 속 외계인 고문 영상을 보며 온 인류가 전쟁 소식에 신경을 끄고 외계인 뉴스에 집중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현실이라면 폭로가 터진 즉시 외계 기술을 미국이 독점하는 것을 경계하며, 단 하나의 오버 테크놀로지라도 먼저 확보하기 위해 강대국 간의 피 튀기는 테크 첩보전이 일어나며 세계 전쟁의 진짜 폭발적인 도화선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방송 송출 한 번에 전 세계가 의심 없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연출 역시 황당합니다. 생성형 AI와 초고화질 딥페이크 기술이 판치는 21세기에 이런 자극적인 폭로 영상이 퍼진다면, 교차 검증과 디지털 포렌식에 최소 몇 주에서 몇 달은 소요될 것입니다. 대중의 대다수는 조작이라며 무시했을 것이고, 영화에서 처럼 충격을 받는 것은 사실 스필버그 감독님 같은 음모론 오타쿠들 뿐 아닐까요? 작중 나열되는 음모론 폭로 영상들조차 제가보기엔 그간 유튜브나 TV에서 한 번쯤 본 듯한 뻔한 장면들의 연속이라 지극히 심드렁했습니다.
마치며: 음모론 전도사가 된 스필버그 감독님
물론 영화의 시각적, 청각적 기술력 자체는 훌륭했습니다. 마가렛(에밀리 블런트)의 소름 끼치는 외계어 방송 사고 장면이나, 역동적인 카체이스, 기차 충돌 시퀀스 등은 큰 스크린에서 숨죽이며 몰입하게 만드는 대단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논리적 설정의 구멍과는 별개로 대형 극장의 시각과 사운드를 지배하는 스필버그의 베테랑 연출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위대한 거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한 번 보고 가볍게 즐기는 평이한 오락 영화가 결코 아닙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정교하고 상상력 넘치는 과학적 SF 대신 안일한 음모론에 완전히 매몰되었습니다. 음모론의 소재를 장르적 도구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단정해버리니 관객에게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핍진성을 맞추려는 각본가로서의 책임감을 팽개쳐버렸습니다. “이거 진짜라니까!”라고 자꾸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감독 혼자 신나서 음모론을 다큐처럼 늘어놓았는데 그게 앞뒤가 하나도 안 맞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번 디스클로저 데이는 거장이 연출한 화려한 시각적 스펙터클은 충족해 주었을지언정, 서사의 인과관계와 현실적인 정서를 완벽하게 외면한 채 본인의 신념만을 일방적으로 전파하려 한 뼈아픈 오판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웰메이드 극장용 영화로서 가볍게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예전 그의 마스터피스들을 보며 온몸이 떨리던 그 깊은 전율과 감동은 끝내 찾아볼 수 없어 씁쓸한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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