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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사회, 문화

소말리아가 해적의 나라가 된 배경과 원인

by [편하게살자] 2024. 1. 16.

소말리아가 해적의 나라가 된 배경과 원인

 

소말리아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나라로, 인도양과 홍해에 접해 있습니다. 이 나라는 1991년 이후로 중앙정부가 붕괴하고, 내전과 가뭄, 기근, 빈곤 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해안가에서는 해적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계 각국의 상선이나 유조선을 납치하고, 인질이나 물품을 요구하며 거액의 몸값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적 행위는 국제사회의 안전과 질서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나포되었던 주얼리호 선원들이 UDT요원들에 의해 구출된 사례와 소말리아 내전을 다룬 영화 블랙호크다운으로 잘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삼호쥬얼리호
삼호쥬얼리호

 

그렇다면 소말리아는 어떻게 해적의 나라가 되었을까요?

 

이해를 위해서는 소말리아의 근현대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말리아의 식민지화와 독립

 

소말리아는 19세기에 이미 열강들에 의해 국토가 쪼개졌습니다. 서부는 프랑스, 북부는 영국, 남부는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20세기 초부터는 침략자에 맞서 소말리족이 꾸준히 저항운동을 펼쳤습니다.

 

2차 대전을 거치며 영국령 소말리란드를 이탈리아가 침공하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패전국 이탈리아령 소말리란드는 UN의 신탁통치를 받게 됐습니다.

 

그 후 1960년 6월 영국령 소말리란드가 먼저 독립을 하고 며칠 뒤, 뒤따라 UN의 신탁통치에서 벗어난 구(舊) 이탈리아령 소말리란드가 협병을 해 결국 소말리아 공화국으로 통일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그때 프랑스령 소말리란드는 이미 에티오피아에 흡수된 상태였고 흩어진 소말리족은 케냐 북동부까지 퍼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소말리아 공화국 정부는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정부와 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양 국가 사이엔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소말리아의 내전과 무정부 상태

 

전쟁은 끝나고 에티오피아 정부와는 관계를 회복하게 됐지만 문제는 소말리아 국내에서 벌어졌습니다.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 대부분에서 그랬듯이 소말리아 공화국의 내정은 극도로 불안했고 결국 대통령 암살과 뒤이은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바레 장군은 처음엔 소련과 손을 잡고 사회주의 노선을 택했지만 80년대 들어선 미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바레의 쿠데타 정부는 그렇게 22년 동안 소말리아를 통치했지만 그 때부터 이미 소말리아는 크고 작은 반정부 세력의 저항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레 대통령을 축출한 것은 그의 심복이었던 아이디드였습니다. 아이디드는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자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 자리에 임명되며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출세 이후, 바레 대통령은 점차 아이디드를 견제하게 되었고 결국 6년 동안 그를 감옥에 투옥시켜 버렸습니다.

 

이후 바레 대통령은 아이디드를 다시 복직시켰는데, 출옥 후 2년 만에 권력의 요직에 복직한 아이디드는 1991년 반군단체 USC를 이끌고 군사정변을 일으켜 바레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나마 중앙정부라고 이름 붙일 수 있었던 바레 정권은 그렇게 막이 내렸습니다.

 

 

아이디드는 자신이 직접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않고 무하마드라는 인물을 새로운 임시 정부의 수반으로 추대했는데 그건 아이디드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력의 장막 뒤에서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수반에 오른 무하마드는 아이디드의 간섭을 벗어나 완벽한 권력을 독차지 하려 했으며 결국 아이디드와 무하마드의 권력 다툼으로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의 내전 상태로 돌입하게 됩니다.

 

국제사회의 개입

 

이런 복잡한 국내 사정과는 무관하게 소말리아라는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도양과 홍해를 감시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최적의 군사 요충지를 소련과 미국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습니다.

 

바레 대통령과 손을 잡은 소련은 내전에 시달리던 쿠데타 정부에 막대한 양의 무기를 공급했고 뒤이어 들어온 미국 역시 소말리아에 친미 성향 정부가 들어서도록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무기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은 소말리아가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의 수렁으로 빠지는 밑거름이 되어 버렸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 넘었지만 무기와 총탄은 끊임없이 공급됐던 것입니다.

 

내전의 혼란을 틈타 무기 수입업자, 마약 밀매업자들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내전 상황이 끝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말리아의 내전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알 카에다 같은 무장 이슬람 세력까지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으니 그 땅에 사는 평범한 국민들의 삶은 극한까지 내몰렸습니다.

 

소말리아

 

소말리아를 취재한 뉴욕 타임즈의 제프리 제틀먼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소말리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지만 국제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내가 그랬듯 그저 문 앞에 서서 광란의 무정부 상태를 바라볼 뿐이다.
과거의 외부 개입은 모두 무참한 실패로 끝났으며
따라서 어떤 나라도 다시 손을 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소말리아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구호물자마저도 막강한 군벌을 형성하고 있던 아이디드 일당이 빼돌리는 상황이 지속되자 UN은 33개국으로 구성된 PKO(유엔평화유지활동)를 2만 8천여 명의 미군 병력과 함께 소말리아에 파견하게 됩니다.

 

미군이 주둔하는 동안 잠시나마 소말리아는 치안을 회복했고 국제사회의 구호물자는 굶주린 국민들에게 전달됐습니다.

 

하지만 93년 4월, 미해병대가 철수하자마자 아이디드는 남아있는 UN 평화유지군에게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 결과 평화유지군으로 남아있던 파키스탄 병사 24명이 소말리아 군벌의 공격에 사망했고 미국 언론인 4명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 벌어진 미군과 아이디드 군벌과의 전투를 다룬 영화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입니다.

 

 

미국은 아이디드의 부관 두 명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침 아이디드의 부관들이 미군 부대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것을 파악한 미국은 최고의 정예 부대를 투입해 한 시간 안에 작전을 완료할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오후 3시 42분에 시작된 이 작전은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습니다. 20분 간격으로 출격한 블랙 호크 헬기가 연달아 적들의 공격에 격추되면서 이 작전은 적 요인 납치가 아닌 미군의 생존이 걸린 구출 작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블랙호크다운

 

결국 19명의 사망자와 80여명의 부상자를 낸 이 ‘블랙 호크 다운’ 사건으로 인해 부시 정부는 소말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게 됐습니다. (소말리아 측의 사상자는 천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미군이 철수한 후 소말리아는 다시 치안부재의 무정부 상태가 되어 버렸고 96년에 아이디드마저 암살당하면서 소말리아는 더더욱 걷잡을 수 없는 내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소말리아

 

 

현재의 소말리아의 현실에 대해 제프리 제틀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소말리아는 실패한 국가라고 부르는 것조차 지나치게 우호적인 평가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실패한 국가다. 짐바브웨도 그렇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최소한 정부군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록 부패하기는 했지만 정부 관료 시스템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1991년 이래 소말리아는 국가가 아니었다.
이 땅은 주변국과 바다 사이에 존재하는 통치 부재의 무법천지라고 불러야 옳다.”

 

 

마치며

 

소말리아의 해적 문제는 단순히 범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국제사회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해적들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해적질을 하는 것이고, 그 뿌리에는 소말리아의 무정부 상태와 빈곤, 국제사회의 무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해적들의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무자비하게 인질을 학대하고, 몸값을 받기 위해 협박하고, 때로는 때로는 살해하기도 하는 그들은 어디까지나 범죄자들일 뿐입니다.

 

다만 그들이 해적질을 하게 된 바탕에는 열강과 국제사회의 원죄가 먼저 있었고, 온전히 소말리아의 민족 스스로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소말리아의 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말리아의 국가 복원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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