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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일상, 생각/단상

근대와 전근대의 시대정신. 아는 것이 힘이다 혹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

by [편하게살자] 2023. 11. 11.

우리나라 속담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고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맞는 듯, 아닌 듯도 한 이 말이 함께 쓰이는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전근대 사회에서는 모르는 것이 약이었고, 근대 사회에는 아는 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근대와 전근대 사회는 이런 서로 다른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 전근대 사회의 시각

 

전근대 사회는 태어날 때 주어진 신분을 바꿀 수 없던 시대, 그 신분이 직업도 정해주던 시대, 그 직업이 평생의 운명이 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자기가 하는 일에 관련된 것 이외의 지식은 쓸모가 없었습니다. 아니 신분에 걸맞지 않게 너무 많이 배운 자는 주어진 삶에 만족할 줄 모르고 불만을 키우다가 결국 사고를 쳤습니다.

 

미녀와 야수_벨
책을 좋아하는 벨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_미녀와 야수 속 벨

 

아는 것은 화근이지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신분이 높은 분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다가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습니다. 그게 심하면 역적으로 몰려 3대가 죽음을 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불만 그 자체를 잠재우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약이고, 아는 것은 독이 될 뿐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 근대 사회의 시각

 

반면에 ‘아는 것이 힘’이라는 명제는 근대사회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사실 “나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알고 있다.” 는 말의 요약입니다.

 

데카르트
데카르트

 

그럼 어떻게 해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은 과학이었습니다.

 

과학을 통해서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있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제대로 판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은 진실에 이르는 열쇠이자, 세상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대접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함께 감정대신에 이성이, 관습 대신에 논리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마치며

 

우리나라에서는 어쩐지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과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공존합니다. 이 두 가지 말은 각각 전근대와 근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모순적인 시각이 공존하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근대사회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전근대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근대화의 속도에 못 따라가고, 생활 양식은 근대화되었지만 인간의 삶과 사회를 규정하는 시대정신은 전근대적인 면모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첨단 산업을 이끄는 기업가나 엘리트 관료들이 사주팔자나 점을 맹신하고, 산업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자동차를 구매하고서는 고사를 지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빨리 근대사회로 변화했기 때문에,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라도 자신의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시대정신이 계층이나 세대에 따라 너무 다릅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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