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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일상, 생각/단상

김영하 작가의 고민 상담: 해야 할 일을 회피하고 싶을 때

by [편하게살자] 2023. 4. 26.

작가 김영하 씨가 KBS Cool FM ' 이적의 드림온' 라디오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코너에서 청취자들의 고민 상담 중 '해야 할 일을 회피하고 싶을 경우'에 대해 조언을 한 바 있습니다.

 

저도 오랜기간 가져온 고민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을 것 같아 내용을 정리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고민사연과 김영하 작가의 답변 내용입니다.

 

고민 사연

 

(19살 소녀, 이모양의 사연입니다.)

 

고민은 다름이 아니라 심각하게 현실 도피를 한다는 겁니다. 심각한 문제에 맞닥뜨리면 그걸 맞서서 해결할 생각은 않고 그걸 잊으려고 TV로, 인터넷으로, 게임으로 도망간다는 거지요.

 

물론 도망을 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참을 수 없는 자괴감, 허무함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고치려고 해 봤지만 현실에 맞서는 독기는 한 시간 정도 갈 뿐 쉽질 않네요.

 

도망가고 싶어질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현실에 맞설 용기가 팍팍 생기는 걸까요?

 

 

김영하 작가의 조언

 

김영하 작가는 이런 고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습니다.

 

 

○ 현대인 중에 상당히 많은 수가 일시적으로나 아니면 장기적으로나 이렇게 행동하고 있으며, 이것은 문학계 용어로 '저항’이라고 한다.

 

저항은 해야하는 일의 중압감이 너무 커서 그 일로부터 달아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작가들도 글 쓰기 전에 겪는 일이 그것과 비슷하다.

 

저항을 극복하는 방법은 딱 하나 있다.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때, 이것이 저항이라는 걸 인정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저항을 겪고 있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다가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결국 최후의 순간에 하는 그 일의 질에 따라서 모든 게 결정된다.

 

마샤 그레이엄이라는 무용계의 대모가 한국에 왔을 때, 춤을 잘 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에 Just do it!이라고 답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Martha Graham
Martha Graham

나의 정리

 

김영하 작가의 고민 상담은 우리 모두가 쉽게 느낄 수 있는 현실 도피와 저항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사례를 들어 저항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해야 할 일은 그냥 하면 된다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Just do it

 

 

[원문]

 

이 적 : 서울시 영등포구에 사시는 19살 소녀, 이모양입니다.

 

"고민이 생겨버려서 처치곤란을 찾았네요.

 

다름이 아니라 심각하게 현실 도피를 한다는 겁니다.

 

심각한 문제에 맞닥뜨리면 그걸 맞서서 해결할 생각은 않고

 

그걸 잊으려고 TV로, 인터넷으로,

 

게임으로 도망간다는 거지요.

 

물론 도망을 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참을 수 없는 자괴감, 허무함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정말 어떡해야 할까요.

 

고치려고 해 봤지만

 

현실에 맞서는 독기는 한 시간 정도 갈 뿐 쉽질 않네요.

 

도망가고 싶어질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현실에 맞설 용기가 팍팍 생기는 걸까요"

 

 

김영하 : 현대인 중에 상당히 많은 수가

 

일시적으로나 아니면 장기적으로나

 

이렇게 행동하고 있죠.

 

 

이 적 : 현실도피!

 

김영하 : 뭔가를 많이 해야 된다는 사실 때문에

 

현실 도피를 하는 건데,

 

그것을 다른 용어로,

 

문학계 용어로는 '저항'이라고 합니다.

 

 

이 적 : 아, 저항.

 

김영하 : 그러니까 작가들이 글 쓰기 전에 겪는 일이

 

그것과 비슷해요.

 

글을 써야 되는데, 어쩐지 책상이 약간 지저분한 것 같아~

 

책상을 치워.

 

그리고 연필을 깎아야 할 것 같아.

 

손톱도 조금 지저분한 것 같아.

 

방 치워. 너무 피곤해, 그러고 자요.

 

 

이 적 : 그러면 하루가 다 가죠.

 

김영하 : 그렇죠.

 

시험 공부 해야돼. 근데 너무 피곤해.

 

시험공부를 하려다 보니까,

 

컴퓨터의 폴더들이 너무 지저분해요.

 

컴퓨터 파일 정리. 폴더를 정리하고,

 

심지어 포맷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포맷하고, 그러면 너무 피곤해. 자는 거죠.

 

이것도 일종의 저항이에요.

 

 

이 적 : 아하.

 

 

김영하 : 그러니까 해야하는 일의 중압감이 너무 커서,

 

그 일로부터 달아나려고 할 때,

 

그러나 그냥 달아나는 것은 너무 자괴감이 크니까,

 

뭔가 별 거 아닌 일을 하면서 보내는 거죠.

 

심지어 어떤 글을 써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모은답시고

 

몇 주 보내는 거예요.

 

사실 그 자료는 사용하지도 않죠.

 

왜 시험기간 다가오면 복사만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친구는 도곡동 사는데, 자기는 봉천동 살면서

 

가서 노트 빌려서 복사하고,

 

그러느라고 하루가 가요.

 

그러고 또 (막상 노트는) 보지도 못해.

 

해야 하는 일의 중압감이 크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점점 더 정교해져요.

 

이 분 같은 경우는 앞으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저항이 훨씬 세련되어질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막을 수가 없어요.

 

방법이 딱 하나 있어요.

 

학생들한테 글쓰기 가르칠 때 그런 얘기하는데,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때,

 

이것이 저항이라는 걸 인정하라는 거예요.

 

아, 이게 지금 내가 숙제를 하기 싫어서 이걸 하는 거구나.

 

이 적 : 아하

 

김영하 : 마샤 그레이엄이라고 무용계의 대모 있지 않습니까?

 

그 할머니가 아흔 살이 다 되어서 한국에 왔었어요.

 

휠체어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렸어요.

 

기자들이 와서 물어봤어요.

 

춤을 잘 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 말씀 해주시죠, 한국의 무용학도들에게,

 

하니까.

 

(할머니 톤으로) Just do it!

 

이 적 : (웃음) 이게 무슨 광고도 아니고.

 

김영하 : 무슨 N사에서 협찬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 톤으로) Just do it! 이러고 갔어요.

 

이 적 : 팩스로 넣어주시지 그걸.

 

김영하 : 현대 무용의 대모가,

 

평생 현대 무용을 개척해 오신 분이 한 말이 그거예요.

 

왜냐하면 무용가에게도 저항이 있거든요.

 

그냥 추면 되는데, 잠시 몸 풀다가 하루 다 가고.

 

그러니까 고민사연 주신 분 같은 경우에도

 

정작 해야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중압감을 주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는 건데요.

 

적어도 이것을 아실 필요가 있어요.

 

모든 사람이 그런 일을 겪고 있다,

 

회사원들이 왜 낮에 모두 빈둥거리겠어요.

 

그리고 왜 야근하면서 일을 다 하겠어요.

 

이 적 : 하하하

 

김영하 : 낮에는 저항하는 거예요. 메신저 하고 뭐 하고~~

 

이 적 : 저항 할 때까지 한 번..

 

김영하 : 저항할 때까지 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몰려서 하는 건데요.

 

그것은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고,

 

이 분은 그걸 아실 필요가 있어요.

 

'어, 지금 그 일을 할 때가 됐군. 그 일을 해야지,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다음 일을 해야지.'

 

이런 사람은 전 세계에 없다. 그건 미친놈이다.

 

(웃음)

 

이 적 : (웃음) 하하하하-

 

김영하 :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다가 하는 건데,

 

결국 최후의 순간에 하는 그 일의 질에 따라서

 

모든 게 결정되는 거죠.

 

이 적 : 아하, 그렇군요.

 

김영하 : 평소에 공부하라고 선생님들은 늘 말씀하시죠.

 

정작 선생님들은 그렇게 했을까요?

 

이 적 : (웃음)

 

김영하 : 안 해요.

 

선생님들도 문제는 최후의 순간에 내요.

 

시험문제 미리미리 낼 것 같습니까?

 

교감 선생님이, '김선생, 그거 어떻게 된 거야?'

 

그러면 '다 돼 갑니다.' 대답하고선

 

집에 안가고 시험문제를 내고 있어요.

 

선생님들끼리는 다 알죠. '이 선생도? 김 선생도?'

 

그러면서 애들보고는

 

'좀 미리미리 공부 좀 해라! 예습 복습 좀 하고.'

 

하지만 그게 안됩니다.

 

 

이 적 : 이러면 좀 힘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자기 합리화가 되지는 않았으면...

 

그러면 김영하 선생님도 '며칠까지 원고 쓰세요' 하면

 

그 때 막 쓰나요?

 

 

김영하 : 90%는 '삐대는' 거죠.

 

90%는 괴로워하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자료도 찾고,

 

드러누워서 생각한다며, 생각하다가 자고...

 

그리고 별 짓을 다해요.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책상에 앉죠.

 

 

이 적 : 재미있는 건 그 거예요.

 

누가 곡을 달라고 그랬을 때,

 

그러면 나한테 두 달 정도는 줘라,

 

사실 두 달 동안 곡을 쓰진 않잖아요.

 

거의 마지막, 거의 전전날 '아직 안 됐냐?' 그러면 '

 

어, 그래' 하고 하곤 했는데,

 

그런데 거꾸로, 이게 하루에 곡을 다 쓸 거면,

 

그러면 하루에 한 곡 씩

 

곡을 다 쓸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에요.

 

그 소모한 59일이 반드시 필요한 거죠.

 

 

김영하 : 저항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예술가들에게 한정된 거라서 말씀을 안 드리려고 했는데,

 

그것은 너무 일찍 시작해서

 

내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그것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적 씨한테 두 달을 줬는데,

 

왜 첫 날부터 시작을 안 하냐 하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약간 부족하기도 하고,

 

좀 더 시간을 끌었을 때,

 

더 좋은 걸 나중에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문제.

 

또 하나는 한 번 손을 대면,

 

특히 이런 예술 장르의 것들은

 

소설이든 예술이든 아마 비슷할 것 같은데,

 

돌이키기가 어려워요.

 

 

이 적 : 맞아요.

 

 

김영하 : 한 번 착상한 것은 아무리 고쳐도 잘 안 돼요.

 

나중에는 어쩐지 이거보다 더 나은 착상이

 

나올 수도 있는데,

 

괜히 기다려보는 거죠.

 

뭐 나올 수도 있죠.

 

그런데 이건 예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이 분 같은 경우는 그런 것 같지는 않고요,

 

이 분 같은 경우는,

 

해야 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이 적 : 우리가 각자 갖고 있는 저항을 바로 저항이라고

 

즉시 인정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많은 진보인 것 같아요.

 

 

김영하 :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이걸 겪고 있다.

 

일부 환자들 빼고는.

 

 

이 적 : (웃음)

 

 

김영하 : 회사에 가면, 보스들 중에 왜 워커홀릭들 있잖아요?

 

 

이 적 : 예

 

 

김영하 : 최근에 영국의 한 경제학 잡지에서는

 

'워커홀릭들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CEO들에게 보냈어요.

 

왜냐하면 당장 볼 때에는

 

워커홀릭인 부장이 일을 열심히 하고,

 

부하직원들에게도 카리스마가 있죠.

 

앞장서서 '내가 해줄게'하면서 다 하고,

 

그래서 단기간에 성과를 높일 수 있지만,

 

이 사람들이 나중에

 

반드시 회사에 큰 사고를 친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일종의 정신병자라는 거죠.

 

 

이 적 : 으흠

 

 

김영하 : 비정상적이라는 거예요.

 

성취욕이 지나치게 강한 거예요.

 

그래서 도덕심이 결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대요.

 

 

이 적 : 아하

 

김영하 : 나중에는 비도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죠.

 

불법적인 거래를 해서라도 성과를 높이려는 유혹을

 

쉽게 받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라는 거죠.

 

 

이 적 : 네

 

 

김영하 :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에요.

 

(고민사연 보내신) 이 분이 정상이에요.

 

 

이 적 : 무척 위안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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